조선 후기에 황해도 풍천의 조정원이라는 품관이 박소사를 목 졸라 살해한 일이 일어났다. 이유는 분명치 않았으나 조정원이 작은 일 때문에 화가 나서 박소사의 옷깃을 부여잡고 문지방에 눌러 질식시킨 것이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조과금은 박소사의 눌린 목 부위에서 뼈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고 증언했다.
사건이 발생하자 조정원은 박소사의 시신을 곧바로 염습한 뒤 빈소를 차려 시신을 숨겼다. 조정원은 부자인 데다 수령을 보좌하던 유황소의 품관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자기 멋대로 처리할 수 있었다. 재물을 풀어 증인들을 매수한 후 자기편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유족들에게도 뇌물을 주어 원수 갚는 일을 잊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조정원이 시신을 숨겨 검시를 방해한 일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살인한 뒤 시신을 매장해 검시하지 못하게 한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이는 검시와 관련된 <무원록>의 규정과 숙종과 영조의 하교를 오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서로 다른 듯한 숙종과 영조의 하교
일찍이 숙종은 ‘살인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체를 확인하고 조사하는 일이다. 간혹 고을 수령들이 살인 사건을 판결할 때 사람들의 죄를 마음대로 높이거나 낮추고, 심지어는 수십 년 동안 판결하지 않아 옥중에서 말라 죽은 사람까지 있다. 앞으로는 해당 관원이 반드시 시신을 파내 검사하여 <무원록>에 적힌 대로 확인함으로써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진실이 묻혀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하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영조가 내린 하교는 숙종의 그것과는 약간 달랐다.
“관련자의 증언을 모두 확보하였다면 사실관계와 일치하지 않는 증거가 나타나더라도 시신을 확인해 시신을 추후에 다시 검사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이미 매장한 시신의 경우에는 이런 원칙을 더욱 지켜야 한다. 주나라 문왕은 밖으로 드러난 유골도 묻어주라고 했는데, 지금은 뼈만 남은 백골까지 파내 검사를 하고 있다. 나는 이런 일을 당하는 사람은 두 번 죽임을 당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더러 살인자를 찾아내지 못한 목숨 값을 받아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살인자를 찾아내기 위해 백골을 파면서까지 검시한다면) 잔인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앞으로 사람을 죽여 몰래 파묻은 경우에는 법에 따라 부검해 죽은 이유를 알아본 뒤 관에서 매장하지만,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시신을 묻은 경우에는 부검하지 말라.”
숙종은 <무원록>에 따라 무덤을 파서 시신을 확인해야 한다고 했지만, 영조는 ‘이미 묻은 시신’을 파내어 확인한다면 너무 잔인한 일이라고 하교했다. 그렇다면 서로 모순된 듯한 두 임금의 하교를 어떻게 이해할까? 정조는 영조의 하교를 풀이하여 “백성의 목숨을 귀중하게 여기고 사건 조사를 신중하게 하라는 뜻이 하교에 뚜렷이 드러난다. 옛글에 선왕은 사람을 차마 헤체지 못하는 마음으로 정사를 베풀었다고 했는데, 영조 임금의 뜻이 바로 그런 게 아니겠는가?” 라고 칭송해 마지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미 묻은 시신’의 의미가 분명치 않다는 것이었다. ‘이미’가 매장된 지 얼마나 지난 경우인지. 그리고 살인을 포함한 시신이 여기에 해당되는지 논의가 분분했다. 특히 살해한 뒤 시신을 숨긴 경우도 이미 매장된 시신이므로 다시 파내 확인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지 분명하지 않아 혼란이 일어났다.
두 선왕의 하교를 한 목소리로 통합한 정조의 해석
정조 원년 1777년 4월 25일, 정조는 선왕의 하교를 두고 신하들과 논의했다. 먼저 정존겸은 “살인 사건은 인명과 관련된 것으로 살인이 있어야만 살인 사건이 성립합니다.(그만큼 살인사건에서는 살해된 시신을 확인하는 게 중요한데) 선왕께서 이미 매장된 시신이라면 부검하지 말라고 하교하셨습니다. 이런 하교를 내리신 뒤부터는 시체를 파내어 부검하지 못해 사건 조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라고 하여 매장된 시신이라도 파내어 검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좌의정 김상철은 “시신을 발굴해 부검하라는 숙종 임금의 하교는 <무원록>에 따른 것이고, 이미 매장한 시신은 부검하지 말라는 영조 임금의 하교 역시 죄인에 대한 판결을 신중하게 처리하려는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백골을 파내어 확인하는 일은 할만한 일이 못 되지만, 관을 거치지 않고 개인적인 합의만으로 시신을 매장해 버리는 폐단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신하가 시신이 매장된 기간을 따져 융통성 있게 처리한다면 아마도 인정과 법률을 절충하는 방도가 될 것입니다.”라고 하여 묻힌 시신을 검시할 지의 여부는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병조판서 체제공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미 매장된 시신은 부검하지 말라는 영조 임금의 하교는 지극히 인자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지만. 장애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이 여러 차례 지방 관찰사로 나가 있어서 이러한 폐단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시신을 파내 부검할 때는 <무원록>에 따라 집행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시신이 매장된 기간을 따져 부검할지의 여부를 결정하자고 아뢰었으니 서둘러 찬성해야 되겠지만, 이게 과연 올바른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체제공은 살인을 한 뒤 시신을 제멋대로 묻어버리지 못하게 하려면 무덤을 파서라도 부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묻힌 지 알마나 지난 시신까지 검시할지는 밝히지 않았다.
한편, 호조판서 홍낙순은 “매장한 시신을 발굴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뒤부터 무덤을 파내어 시신의 상처를 확인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목숨을 내놔야 할 사람은 죽지 않고 목숨을 바치지 않아야 할 사람이 혹 죽기도 하니, 원통함과 억울함이 풀리지 않아 문제가 될 것입니다. 다만 부검을 허락하는 명령을 내리시면 백성들 가운데 간사한 사람들이 오래전에 묻힌 백골을 파내 증거를 조작해 살인 사건을 꾸며낼 것이니 그로 인해 발생할 해악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듯합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명령이 내려진 날은 기점으로 삼아 그 전에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는 햇수를 정하여 입법함으로써 오래 전에 묻힌 시신은 발굴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좋을듯 합니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홍낙순은 시신을 은닉한 범죄라면 어떤 경우에는 무덤을 파혜쳐 부검해야 하지만, 묻힌 시신을 파내어 부검할 수 있다고 허락한다면 너도나도 백골을 파낼 것이므로 새로 접수되는 살인사건이 넘쳐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때문에 검사를 위해 파낼 수 있는 시신의 매장 기간을 어느 정도 결정하여 공지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논의에 참여한 대신들은 고의로 시신을 파묻은 경우라면 언제든지 시신을 파내어 부검하는 게 <무원록>의 뜻이라는 데는 동의했지만, 매장한 뒤 얼마나 지난 시신까지 부검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시신 부검에 존재하는 함정
1777년 5월, 정조는 숙고 끝에 ‘시신을 파내어 부검하는 법’을 정리했다.
“선왕들의 수교(受敎 :왕이 내린 하교)를 가져다 보니 영조 임금의 생각도 숙종 임금과 같아서 파내는 것을 금지한 게 아니었다. 대체로 <무원록>에서 시체를 파내어 검사하는 법은 관에 알리지 않고 개인적으로 합의한 끝에 ‘사람을 죽이고 몰래 매장한 경우에는 법대로 부검하여 원인을 조사하라’는 것이 어찌 숙종 임금의 하교 중에 있는 ‘한결같이 <무원록>을 따르라’는 하교와 다르겠는가? 지금 이 문제를 논의하는 사람들은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시신을 이미 묻은 경우에는 부검하지 말라’라는 하교를 조정의 금령으로 보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부검할 수 없는 경우란 이미 백골이 되어버린 시신뿐이다. 두 임금의 하교를 중복하여 법령으로 제정할 리 없으니, 내가 밝혔듯이 두 임금의 뜻을 정확히 헤아려 하교대로 시행하라.(중략) 오늘 이전에 이미 묻은 경우는 특별히 명령이 있기 전이므로 절대로 겅솔히 파헤쳐서는 안 된다. 혹시 매장된 지 여러 해가 지난 시체를 파내어 학인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경솔하게 파내어 검사하지 말고 반드시 관에 보고한 뒤에 감행하라.”
정조는 살인자가 피해자를 살해해 은닉한 경우라면 <무원록>에 따라 파내어 부검해야 하지만,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묻힌 지 오래 된 ‘백골’ 상태의 시신이라면 반드시 관에 고한 뒤에 부검 허락을 받도록 했다.
시신이 썩기 전에 부검하라
정조의 하교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부분의 수령들은 매장된 시신이라면 무조건 상부에 보고한 뒤 회신을 기다렸다. 때문에 시신이 부패해 부검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폐단이 생겼다. 다산은 이 문제를 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보았다.
“신이 산가 살펴보건대 관을 열고 부검하는 것과 무덤을 파서 부검하는 방법은 <무원록>에 분명히 실려 있으니, 예로부터 내려온 법률입니다. 최근에 수령이나 아전 등이 <대전통편>에 추가된 주석만을 근거로 ‘시체를 파내 부검할 때 조정이 새로 금지한 게 있으니 반드시 관찰사가 장계로 아뢴 뒤 허락이 떨어지길 기다렸다가 관을 열어 부검해야 한다’라고 합니다. 이렇다 보니 살인범이 시신을 제멋대로 묻어버린 형사 사건의 경우, 시간이 너무 흘러 시신이 백골로 변하는 바람에 대부분 관을 열어 부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이로 말미암아 사형에 처해져야 할 자가 요행히 벗어나고, 허위 고발을 당한 자가 감옥에서 굶주려 병들어 죽으면서도 진실을 밝히지 못하니 어찌 안타깝지 않겠습니까? 살인자가 마음대로 은닉한 시신을 부검하는 작업은 시각을 다투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천리를 달려 아뢴 뒤에 다시 허락이 떨어지기를 기다린다면, 시일이 오래 걸려 시체가 썩고 문드러져 증거를 찾아내기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이제 숙종 임금이 무덤을 파내어 부검하지 말라고 명령한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또 영조 임금의 하교를 보니 ‘사람을 죽여 몰래 파묻은 경우를 제외하고 시신을 이미 묻은 경우에는 부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시신을 몰래 파묻은 경우에는 곧바로 파내어 부검하도록 했으니 영조 임금도 이를 금지하지 않았습니다. 숙종 임금과 영조 임금의 하교가 이처럼 명백한데도 <대전통편>에는 ‘조정(朝政)에서 시신을 파내어 부검하지 말라고 했으니 관찰사가 보고한 뒤에 부검 여부를 결정한다’라는 주석이 달려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영조 임금의 하교 말미에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시신을 이미 매장한 경우라면 부검하지 말라’라는 일곱 글자 때문입니다. 시체 부검에 관한 법을 보면, 살인 사건뿐만 아니라 유배당한 죄인, 길가의 시체 및 스스로 목을 매 죽거나 물에 빠져 죽은 경우에도 부검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영조 임금께서 법조문을 분명히 하기 위해, ‘사람을 죽여 몰래 파묻은 경우에는 법에 따라 부검해 죽은 이유를 알아본 뒤 관에서 매장하고,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시신을 이미 묻은 경우에는 부검하지 말라’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런 경우’라는 말은 ‘살인범이 사람을 죽여 제멋대로 묻은 경우’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정조 임금은 이 구절을 풀이해 ‘백골의 부검’이라고 했습니다만, ‘이미 묻었다’라는 두 글자를 쓰면서 시신이 오래 되었거나 그렇지 않음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백골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백골 외에는 정조 임금께서 사신을 파내어 부검하도록 허락했으니, 장계로 아뢴 뒤 시신을 파내어 부검할 수 있도록 허락하겠다는 말은 햇수가 오래된 시신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묻힌 기간이 오래 되지 않은 시신의 경우에는 장계로 아뢰지 않고도 즉각 관을 열어 부검할 수 있는 뜻으로 관찰사에게 반드시 장계를 올려 명령을 받아 부검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산은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시신을 이미 묻은 경우에는 부검하지 말라.”라는 영조 임금의 하교 중에서 뒷부분만 강조하는 바람에, 살인한 뒤 시신을 숨기려고 몰래 매장한 경우에도 부검하지 못하는 폐단이 발생했다고 보았다. 때문에 은닉이 아닌 다른 이유로 매장된 경우에 시신을 경솔하게 파내어 부검하지 말도록 한 것이지, 살인한 뒤 숨긴 경우까지 금지한 것은 아니라고 해석했다. 또한 관에 보고한 뒤 시신을 파내어 부검할지 여부를 결정하라고 <대전통편>의 기록도 오래되어 백골이 된 시체를 말한 것이므로, 시신이 묻힌 지 오래되지 않았다면 이 조문의 적용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해석했다.
요컨대 다산은 살인자가 시신을 몰래 묻은 경우라면 ‘파내어 부검할지 여부를 관에 보고한 뒤 결정’하라는 조항의 적용을 받을 필요 없이 사또가 조사할 수 있다고 이해한 것이다. 다산은 살인 사건이라면 무덤을 파내서라도 정확하게 조사해야 하며, 법전이나 하교의 내용이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면 곧바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만 원통하고 억울한 상황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약용, 조선의 정의를 말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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