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9년 (1785년) 4월, 황해도 평산에 사는 최 씨 과부는 당질(사촌형제의 아들로 오촌 관계) 조광진과 몰래 간통을 했다. 며느리 박 씨가 이를 눈치 챈 것 같아 겁이 난 최 씨는 조광진과 모의를 해서 살해를 하고 말았다. 양반가에서 벌어진 음란한 사건일 뿐 아니라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살해하고 조관진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군졸과 노비를 사주해 거짓 증언을 하도록 하는 등 조사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더욱이 사건을 조사했던 사또와 황해도 관찰사 등이 파직되면서 사건 정황을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한 채 여러 해가 흘러가 버렸고, 그 사이에 조광진과 동네 사람 이차망 등 중요한 피의자들이 옥사하는 바람에 사건을 더욱 미궁 속으로 빠뜨렸다.
중요한 피의자 조광진이 범행을 자백한 뒤 처벌을 기다리다가 병사하자, 정조는 조광진이 죽은 제다 풀리지 않은 의혹이 남았다고 판단해 시어머니 최 씨를 사형에 처하지 않고 장 100대에 2000리 유배형으로 감형했다. 후일 다산은 이런 결론에 대해 불만족스러워했고, 이 사건의 조사 처리 과정을 다시 살펴보게 된다. 그리고 조사가 부실해 시간만 보내다가 죄 없는 이 차망은 감옥에서 죽고 참형에 처해져야할 조광진마저 법대로 처벌하지 못햇다고 사또들과 형조 관리들을 비판했다.
박 씨의 자살로 결론을 내린 초검관과 복검관
1785년 4월, 당시 평산부사 정경중은 이 사건을 며느리 박 씨의 자살로 결론지었다. 양반댁 과부였던 최 씨가 행실이 아름답지 못해 평판이 나빴지만, 며느리 박 씨는 이를 알면서도 묻어둔 채 시어머니 최 씨를 성심껏 잘 모셨다. 하지만 최 씨가 자신의 부끄러운 행위를 반성하지 않고 도리어 며느리에게 노여운 감정을 품고 날이 갈수록 핍박하자, 이를 원망하던 박 씨는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이에 다산은 ‘시어머니 최 씨가 박 씨를 직접 칼로 찌르지는 않았지만 협박한 죄를 물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장경중은 죽은 박 씨의 팔에 묶인 흔적이 없고, 손으로 칼을 막은 자국이 없다는 사실을 근거로 타살이 아닌 자살로 추론했다. 하지만 다산은 시신에 묶인 흔적이 없고 칼을 막은 자국이 없다 하더라도 이를 자살의 근거로만 볼 게 아니라 공범의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더욱 상세하게 조사했어야 한다고 장졍중을 비판했다..
한편 이 사건을 복검한 배천군수 이서희도 초검관과 마찬가지로 박 씨가 자살한 것으로 보고했다.
‘박 씨의 몸에 난 상처의 깊이가 서로 다르고 칼을 처음 댄 부위와 거둔 곳의 깊이가 다른 것으로 볼 때 <무원록>이 스스로 목을 찌른 조문’과 일치한다. 이 사건은 자살이 분명하다.‘
그는 며느리 박 씨가 너무 부끄럽고 원통해 사는 게 죽느니만 못했으므로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추정했다.
암행어사를 파견하라
황해도 관찰사 엄사만의 고문수사를 알게 된 정조는 규장각 각신 이곤수를 암행어사로 파견했다. 이곤수는 자질이 매우 뛰어나 평소 정조의 무한한 신뢰를 받던 인물이었다. 1782년 2월 정조는 학교를 내렸다.
“이번에 평산에서 일어난 사건은 그 정황이 명백히 드러나지 않았고 간통 문제도 연루되어 있어서 애매하고 추잡하며, 간계와 속임수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탓에 해를 넘기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고도 아직 판결을 못하고 있다. 죄의 유무를 판결하기 어려운 사건으로 판결된다면 최 여인을 사형에 처할 수 없지만 간통 사건으로 명확하게 판결이 나면 박 여인의 원통함을 빨리 씻어 주어야 할 것이다.”
4월 이곤수는 두 달여의 암행 결과를 임금에게 올렸다.
“신이 평산부에 달려가서 재령군수, 배천군수 등과 함께 관련자들을 모두 잡아다가 조사했습니다. 그때 조광진은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찌 고문을 받고서야 바른대로 답하겠습니까? 박 씨를 죽이게 된 과정을 말씀드린다면 저와 최 씨가 함께 박 씨를 묶고 목을 졸랐습니다. 또 저와 최 씨가 매우 가까운 친족이고 최 씨의 아들 조광선이 나이가 어려 그 아이가 간통 장면을 본다 해도 신경이 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간통하다가 이렇게 용서받기 어려운 죄를 범했습니다. 그런데 며느리 박 씨가 시집온 뒤에, 저와 최 씨가 간통하는 정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1785년 4월 15일 최 씨가 우리의 일을 며느리가 알고 있으니 죽여 입을 막지 않는다면 앞으로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20일 아침에 아들 조광선이 안장을 빌리러 마을을 출타하고 집안의 노복들이 나물을 캐러 간 틈을 타, 저와 최 씨가 힘을 합쳐 박 씨의 목숨을 헤쳤습니다. 목을 조르는 것은 제가 먼저였고, 목에 칼을 댄 것은 최 씨가 먼저였습니다.’라고 털어놨습니다. 또한 신이 몰래 마을을 왕래하며 오가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두 한결같이 ‘박 씨의 원통함을 씻어 주어야 하고 조광진은 죽어도 애석할 것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다시 피의자들을 엄히 심문하니 조광진이 최 씨와 간통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이 옥사는 살인사건인 동시에 간통사건입니다. 죽일 마음을 먹고 계획을 세우거나 죽이는 데 협조한 거은 본래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주범과 종범을 구분한다면 최 여인은 음란한 아낙네이자 사나운 시어미로 그 소행을 따져 보건대 무슨 직인들 못하겠습니까마는, 여자가 백주에 살인을 저지른 사례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조광진이 박 씨를 묶어 놓고 목을 졸랐으며 찌르고 또 찔렀다고 남김없이 진술했으니 그를 주범으로 단정하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을 듯 합니다. 안으로는 간사한 계집종을 위협하고 밖으로는 교활한 장교와 결탁해 이차망을 끌어들여 죄를 덮어씌우는 등, 그가 한 짓은 구구절절이 음흉하고 끔찍합니다. 죄인 최 씨와 조광진, 그리고 이차망은 일체 형구를 채워 엄히 가두어 두고 처분을 기다립니다.”
암행어사 이곤수는 조광진을 주범으로, 최 씨를 종범으로 보고했다.
다산, 주범과 종범 바꿔 보고한 형조 비판
형조에서는 이곤수의 암행보고서를 읽은 뒤 비로소 의문이 사라졌다고 높이 평가하면서 공식적인 형조의 심리 의견을 정조에게 올렸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형조가 올린 보고서의 주범과 종범은 이곤수가 밝힌 것과는 달랐다.
“가까운 친족 사이에 간음은 윤리 도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특히 형률에 주모자는 참형이요, 공범자는 교수형이라고 했으니, 비밀을 아는 사람을 죽이려고 계책을 세운 사람은 최 씨이고 힘을 합쳐 범행을 저지른 사람은 조광진입니다. 최 씨는 조광진과 가까운 친척으로서 양반 씨족의 여인이니 <속대전>의 ‘양반 부녀로서 정욕을 채우려고 풍속을 어지럽힌 자는 간통한 사내와 더불어 교수형에 처한다’라는 조항을 적용해야 합니다”
암행어사 이곤수의 판단과 달리 형조에서는 최 씨를 주범으로 조광진을 종범으로 주장했다.
나중에 다산은 형조의 이러한 판결이 매우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조광진은 집안 숙모와 간통하여 죽을죄를 저지르게 했으니 이는 첫 번째 살인이요, 사생아를 낳아 몰래 죽여 묻었으니 두 번째 살인이요, 칼을 들고 박 씨를 살해했으니 세 번째 살인이요, 이차망을 허위로 고발하여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니 네 번째 살인이다. 이런데도 참형을 내리지 않는다면 나라에 어찌 법이 있다고 할 것인가? 형조가 심리를 잘못하여 조광진에게 주범이 받을 참형이 아닌 교수형을 판결하여 이로 인해 법률가들의 의견이 혼란스럽게 나뉘어졌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다산은 형조가 주범 조광진을 참형으로 즉시 처형하도록 임금에게 아뢰지 않았고, 그 결과 바로 사형에 처해지지 않은 채 교수형을 기다리던 조광진이 감옥에서 병사함으로써 죗값을 치르지 않은 채 죽게 두었다고 비판했다.
다산은 성실하고 엄격한 조사에 근거한 정확한 판결이야말로 죄인을 공정하개 처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정약용, 조선의 정의를 말하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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