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상시국감
저의 방식이 정답이라고 장담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현행 국정감사의 보완방법 가운데 하나로서 힌트는 될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합니다.
2011년 국정감사 정책자료실 <이낙연의 상시 국감> 서문
국회 국정감사는 가을에 시작한다. 10월 추수의 계절에 국회의 수화물도 풍성하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국정감사의 열매는 대개 빈약하기만 하다. 핵심 이슈만 달라질 뿐 정쟁의 수단으로서 폭로와 호통의 방식은 되풀이된다. 감사를 받은 기관 역시 국감 기간에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고 여기는 게 보통이다.
이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20일간의 국정감사는 세계에서 유일하다. 2019년에도 14개 상임위를 중심으로 788개 기관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한해 사이에 국정감사의 대상 기관 수는 35개 늘어났다.
갈수록 그 수가 증가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그대로다. 말로는 정기국회의 꽃이라 불리지만 부실 감사의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고, 국감이 무용하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이낙연은 2004년 국감이 끝난 직후 후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첫째는 의원 1인당 발언 시간이 너무 짧다는 점이다. 건교위는 의원이 많기 때문에 직원들의 1차 문답시간이 1인당 10분이었다. 피감기관의 답변을 포함해서 10분이다. 그러나 깊이 있는 추궁이나 토론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것은 어떻게든 보완해야 한다. 상시 국감이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다섯 번째 국검, 세 가지 소득과 아쉬움) 오마이뉴스 2004. 10. 25)
이낙연은 대안으로 ‘상시 국감’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러나 현실화되기까지 가야 할 길이 멀었다. 이 글을 기고한 지 7년만인 2011년 이낙연은 국감의 고질적 문제를 극복해 보자며 홀로 도전에 나섰다. 국감이 끝난 후에도 소관 기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에 대한 개선을 촉구하며 ‘나 홀로 국감’에 나선 것이다. 국감 이후 1년간 피감기관들이 국감에서 약속한 것들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수시로 점검에 나섰고, 비판과 제안과 그에 따른 정부의 후속 조치 등을 집대성했다. 그리고 <이낙연의 성시 국감>이란 제목의 자료집을 펴냈다. 그는 “상시 국감의 필요성이 제기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실현되지 않으니 이번엔 국감을 혼자라도 해보고 싶었고, 해보니까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라며 자신의 소신을 피력했다.
국회 상임위에 맞춰 노인, 취약계통, 보육, 식품, 보건의료, 의약품, 행정부 감사와 견제, 기타 사회 분야 등 총 8개 주제로 구성된 자료집은 2011년 국감의 화제가 되었다. 상시 국감자료집이 국정감사장에 도착했을 때의 반응을 양재원 보좌관은 이렇게 기억한다.
“상시 국감을 한다고 하니 설마 했겠지요. 그런데 막상 자료집이 수레에 실려 국정감사장에 도착하니까 다른 의원실에서 친한 보좌관들이 ‘징하다’ ‘너무 하는 거 아냐?’ ‘우리 죽이려고 한다’ 성토가 대단했습니다. 일단 책의 두께에 질렸다고 했어요. 당시 자료집이 1,000페이지가 넘어가는 분량이었거든요. 다른 의원실에서 ‘전화번호부’라고 불렀습니다.
상시 국감에 대한 이낙연의 의지와 노력은 결실을 보았다. 노인 고독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독거노안 사랑 잇기 사업이 시작됐고,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식품 이물발표를 정례화 했다. 김포공항 계류장 복원공사가 또다시 부실하게 진행된 것을 끈질기게 추적, 자체 특별감사를 끌어낸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였다.
양재원 보좌관은 무엇보다 피감기관들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을 뚜렷하게 확인했다고 말했다.
“힘들지만 재밌었습니다. 피감기관인 복지부, 식약처 등이 우리 의원실을 제일 무서워했어요. 1년에 두 달만 반짝하던 국감을 1년내내 하니까 늘 긴장하고, 사소한 것에도 벌벌 떨었지요. 우리가 자료를 요구하고 문제를 지적하면, 바로 시정이 됐고요. 가령 2011년에 자일리톨의 과장 광고 문제를 제기하고 보도자료를 만들고 있는데, 그날 오후 식약처가 자체 발표를 해버렸어요. 선제적 대응을 한것인데, 정부에서 발표하니 문제는 훨씬 빨리 공론화되고 개선됐습니다.”
정치인 이낙연은 상시 국감을 시작으로 국회라는 자신의 업무 현장의 문화와 분위기를 능동적으로 바꾸어갔다. 지방자치단체의 국감 장소를 해당 지역의 도청 대신 충남도는 태안 기름유출을 피해현장으로, 전북도는 새만금 간척지 등 현장으로 옮겼다. 또 국감장에서 도지사와 군수의 자리도 동일 서열로 배치해 행정의 동반자로 발언할 수 있도록 했다. 중부국세청이 국정감사 장소에 의원들의 사진을 종일 상영하자 과도한 의전을 지적하면서 당당하게 국정감사에 임하기를 당부했다. 그는 “국정감사는 정부를 혼내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은 인정하고 개선 방안을 찾으면 됩니다.”라면서 피감기관에 구감의 본래 목표를 상기시켰다.
2011년 이낙연의 상시 국감 도전은 국감의 원래 목표를 확인하고, 개선방안을 찾으려는 최초의 시도였다. 지금도 매년 국감이 끝나면 상시 국감을 도입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이를 제안하고 직접 추진했던 누군가의 이름을 떠올리지 않을까.
<글 이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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