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이형문의 창가에서 49) 청렴(淸廉)하게 사는 공직자상(公職子償)
HOME 회사소개 이용약관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기자회원신청
로그인 회원가입
기본스킨 오렌지스킨 보라스킨 연두스킨 그레이스킨
2023년 12월 10일 일요일
뉴스홈 > 만평
2023-02-07
글자크기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이형문의 창가에서 49) 청렴(淸廉)하게 사는 공직자상(公職子償)

청렴(淸廉)하게 사는 공직자상(公職子償)

 

다산 정약용선생 목민심서4872쪽에 청심(淸心)과 절용(節用)이란 내용이 있는데 청심은 비로 맑고 깨끗한 마음이니 공직자는 청렴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는 것이며, 절용은 예산을 아껴서 사용하라는 뜻으로 국민의 혈세인 공금(公金)이나 공적재산을 아끼고 절약해야 국가와 자치단체의 경영이 잘 유지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다산은 청심의 목민관의 본무(本務)이고, 절용은 목민관의 수무(首務)라 선언했다. 다산선생은 공공의 재산을 사적인 재산처럼 아껴야 현명한 목민관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의 공직자들은 어떤가? 못 돌라먹는 놈이 바보라 할 정도로 공직사회가 썩을 대로 썩어 그 비리(非理)가 하늘을 찌를 듯 엄청날 정도로 부정으로 잡혀들어 가는 자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과 필자가40대 후반 무역업당시여수에서 활어선(活魚船) 장어(아나고)를 배 밑창에 싣고 일본 큐슈에 있는 시모노세끼(모지항구)에 직접 필자가 동행하며 어판 장을 구경 간 일이 있었다.

새벽3시에 도착 검역당국에 입항수속을 받아야하는 일이 있었다. 검역담당자 젊은 말단 공직자가 직접 나와 활어장어를 확인 후 세관장 직인을 그 자리에서 바로 서류에 찍어주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혹시 나중에 다시결제 받아야 되는 것 아닌가싶어 물었더니 나로써 됐다( 보꾸데 요로시데스)라고 대답해, 한국에서는 당시 감히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런 사실을 보며 당시의 한국사회의 공직자들과 비교가 됐다. 1975년 박정희 대통령당시 우리나라 공직자의 비리는 엄청나 작은일 하나에도 돈을 건네지 않으면 성사되는 일이 없어, 심지어 유행어로사바사바(불교에서 말하는 소원성취의 뜻) 하지 않고는 성사되는 일이 없었다. 오직하면 유전무죄(遺傳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고 까지 유행하고 있을까? 우리나라 공직자들이야말로 아직까지도 비리천국이다.

과거 필자의 한 친구가 재무부 토지조사과에 있다가 나중에 광화문세무서 법인세과에 근무했다. 공직자가 동창모임의 식사비잔액을 지불해버리거나 자택입주당시(서울 연회동 도둑촌이라 불리는 곳)고급주택지300여평 (이층건물에 잔디까지 깔린 개인 전원주택)날에 참석했는데 집 구경 시켜준다며 지하창고를 구경시켜주는데 깜짝 놀란 사실을 냉장고 세탁기 대형TV 할 것 없이 뜯지도 않은 처음 보는 물건들에 경악했고, 그날 접대음식에 상다리가 휘여 질정도로 한 번도 본적 없는 오늘날의 게맛살(꽃게)에 잡체 등 음식 등을 너무 많이 포식해 나중에 배탈설사까지 났던 일이 지금까지도 기억난다.

필자가 대학 다니던 당시 신성동에서 함께 방 하나를 얻어 자취했던 친구인데 공지 땐 어찌나 바뿐지 얼굴보기가 어려워 몇 년 뒤엔가 연락을 받고 서울대 병원응급실이라며 연락이 와 가봤더니 당뇨합병증으로 결국 죽어 장지에까지 다녀온 바가 있다. 얼마나 공직생활 때 부정한 짓들이 많았는지? 죽은 후에 본마누라 말고도 둘이나 더 있어 재산관계로 본마누라와 송사관계라는 말을 들었다.

 

미국 워싱턴 시장까지 역임한리야판사의 실예(實例)에 있었던 판결이다.

한 노인이 빵을 흠처 먹은 죄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됐는데 판사가늙어가지고 염치없이 빵을 그리도 흠처 먹고 싶었던가요? 라고 묻자 노인이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하기를 사흘을 굶다보니 그때부터 아무것도 안 보였습니다. 라고 대답한다.

판사가 그 대답에 말문이 막혀 한참 고민하던 후에빵을 훔친 절도행위는 10달러에 해당합니다. 땅 땅땅 하고 판결했다. 그러자 방청석 여기저기서 너무한다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판사가 다시 자기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벌금은 내가 내겠습니다. 오늘 이 노인 앞에서 참회(懺悔)하는 마음으로 대신 내는 것입니다.” 이어서 판사는이 노인은 이후 이 재판정을 나가면 또다시 빵을 훔치게 됩니다. 그러니 여기 모이신 방청석 여러분도 그동안 좋은 음식을 많이 먹은 대가로 이 모자에 조금씩이나마 돈을 기부해 주십시오. 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 모인 방청객들이 십시일반으로 모금하기 시작했던 그 금액이 무려247달러나 됐다.

이 명재판관이 나중에 미국 워싱톤의 시장까지 했다는 실예의 전기를 읽으며 언젠가 중국의 포청청 청백사가 기억나 함께 옮겨보며, 오늘날 우리나라에 오염된 관직의 현실을 실감하면서 그런 참신한 판사같은 분들이 우리나라에도 많이 나와야 나라가 바로 설 것이라 생각해 본다.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뉴스스크랩하기
기자이름없음 
만평섹션 목록으로
112 기고) 주민과의 소통 ...
고립무원 아동 보호 온 지...
강진경제 큰 보탬이 될 전...
“강진만 연극단 구강구산,...
김한얼 기자의 ‘강진의 민...
다음기사 : 김한얼 기자의 민담다시보기-34 도암면 석문산 탕건바위 (2023-02-14)
이전기사 : 김한얼 기자의 강진의 민담 다시보기 33 '포목장사꾼과 나그네' (2023-02-07)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독자기고) 최...
“(재)남미륵사 ...
강진에서 광주까...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게시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회사소개 개인정보보호정책 이용약관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알립니다 독자투고 기사제보 정기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