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백성의 입을 틀어막은 왕
김현철(전 언론인)
먼 옛날 주나라 ‘여(厲) 왕’(BC 9세기)의 폭정에 백성들의 불평불만은 날로 높아 가는데도 왕은 '감히 네놈들이?'하는 식으로 백성들을 무시하고 자신의 권위만 내세워 일체의 '소통'을 모르는 폭정으로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서로가 말하기를 꺼렸고 친한 사이를 만나도 말없이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이런 풍조를 알게 된 왕은 '소공'이라는 신하에게 “거봐, 내가 강압책을 쓰니 백성들은 말도 제대로 못하지!”하고 으스대며 자랑했다.
그러자 '소공'은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그것은 단지 백성의 입을 막아버렸을 뿐입니다. 하지만 백성들의 입을 막는 것은 흐르는 강물을 막는 것보다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물이 차서 넘쳐 둑을 무너뜨리게 되면 수많은 백성이 희생당할 것입니다. 그러니 보다 현명한 방법은 물길을 만들어 물이 순리대로 흐르도록 해야 하듯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도 자유롭게 말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현대어로 표현한다면 바로 '소통'을 강조한 말이다.
그러나 폭정에 맛 들린 왕은 제 버릇을 못 고치고 결국은 패망의 길을 걸었다. 이렇게 실수하며 살아가는 것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우리들 삶의 모습이다.
힘으로 남을 이기려 하면 힘이 부족해서 복종하는 척 할 뿐. 그러나 아래 사람들에 대한 소통, 즉 덕으로써 남을 복종시키려 하면 기뻐하며 진심으로 복종하는 법이다.
이 교훈이 어찌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나 대통령에만 국한 되겠는가! 대기업체에서 조그마한 회사에 이르기 까지, 또는 사회 각계각층의 조직이 모두 해당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마련한 밥상에 창녀와 세리를 초청했다. 또 '내 아버지의 성전에서 장사하지 말라'며 상인들의 좌판 대를 뒤엎어 버렸다. 모두가 당시의 잘 못된 제도를 비웃고 거스르는 과격한 언행이었다.
당시의 정권 강자들에게는 이러한 성자들이 골칫거리 '시비꾼'에 불과했으리라.
그러나 옳고 그름을 가리는 시비는 트집 잡기도 싸움질도 아니다. 내가 소속된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워 보자는, 다시 말해, 내 사회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충정에서 나오는 몸부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조선 중종(1488~1544) 때 고관대작의 부패척결을 부르짖고 이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언로(言路;오늘날의 언론)가 개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중종의 사약으로 38세의 젊은 나이에 70여명의 젊은 동지들('기묘명현'= 己卯名賢이라 부름)과 죽임을 당한 조선의 개혁가 조광조(趙光祖의 사후, 왕의 뉘우침으로 '영의정'으로 추존됨)가 사약사발을 든 바로 그날, 화순 능주벌에는 흰 눈이 한없이 내렸다고 전한다. 이를 두고 '기묘사화'(己卯士禍)라 한다.
지도자(왕)가 아래(백성들)와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조광조가 거느리던 70여 충신들은 사약 대신 부패가 척결되고 천민 백성들까지 잘 사는 국가의 훌륭한 고관 생활을 지낼 아까운 애국동지들이었다.
지혜 있는 사람은 '나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을 나의 스승으로 받들고, 나를 칭찬만 하는 사람은 언젠가 나를 해친다'는 진리를 알고 있다.
듣기에는 쓰지만 실로 그 충고가 자신을 위해 유익한 것인 줄을 안다면 이미 그 지도자는 절반은 성공한 지도자라 할 수 있다. 아래 사람들이 지적해 주는 실수를 통해서 겸손한 자세로 자신의 잘 못을 뉘우치며 고쳐 나갈 때, 즉 끊임없이 소통을 할 때 성공의 열매는 바로 눈앞에 다가오는 법, 바로 실수는 성공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천로역정', '넘치는 은총' 등의 저자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설교가였던 영국의 존 버니언(John Bunyan, 1628~1688]은 "겸손한 사람은 언제나 신을 그의 안내자로 삼을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진리'의 세계에서 본다면 '권위의식'이란 한낱 거짓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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