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전라병영성
이 성 남
광주지방조달청장
광주에서 성전을 거쳐 병영에 들어서니 저 멀리 수인산이 아스라이 시야에 들어온다. 읍내를 둘러싸고 있는 산자락으로부터 아늑하고 포근한 기운이 감돈다. 여기가 조선시대 호남의 육군사령부가 있었던 병영이라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오른다.
병영은 ‘병마절도사영’의 준말로 전라도 육군의 훈련과 지휘부 기능을 담당한 총사령부였다. 병영성은 설성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축조 당시 꿈속에서 계시를 받아 ‘눈의 자국’을 따라 축조한데서 유래되었다. 성 주변에는 지금도 설성을 이름으로 한 식당이나 슈퍼가 많다.
병영성은 당시 5개의 영과 53주 4성을 통할하던 군사 요충지답게 규모가 꽤 크다. 하지만 오랜 세월 탓일까. 아쉽게 성곽 안의 건물이나 유적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성곽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어 복원공사 중에 있다는 점이다.
병영성 안을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성문으로 발길을 돌리니 하멜의 기념관과 풍차가 보여 다소 의아했다. 하멜과 병영성이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하멜은 강진병영성에서 7년의 억류생활 중 네덜란드로 탈출하여 ‘하멜표류기’를 썼다는 전시관의 자료를 보고나서야 수긍이 갔다.
이런 인연을 바탕으로 강진군은 하멜고향인 호르큼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2007년 하멜기념관을 개관했다. 기념관 밖에는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풍차와 호르큼시가 기증한 하멜의 동상과 대포가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었다.
지금도 병영성 주변에는 하멜의 흔적이 여러군데 남아있다. 빗살무늬 방식으로 쌓은 돌담이 그렇고, 병영이 상업으로 이름을 떨친 것이 그렇다. 이 모두가 세계에서 가장 제방을 잘 쌓고 상업이 발달한 네덜란드와의 인연으로 인한 유산이다.
병영성과 하멜은 한국과 네덜란드를 연결해 주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한다. 히딩크 감독도 이곳을 방문해 남다른 우의를 과시한 적이 있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이런 차별화된 유산이 고향 강진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강진군은 복원공사가 완료되면 역사문화관광지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한다. 세부 계획까진 접하진 못했지만 애향인의 입장에서 고창읍성을 벤치마킹 하는 것은 어떨까? 병영성보다 일찍 복원된 고창읍성은 현재 유명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해마다 봄이면 성내 철쭉과 지역의 청보리밭 축제를 연계해 상춘객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어디 봄뿐이랴. 사시사철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고창읍성 못지않게 역사와 문화가 스며있는 병영성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모습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지난 4월 15일부터 3일간 하멜기념관일대에서 제14회 병영성축제가 열렸다. 축제 첫날 병영면사무소에서는 병영상인을 재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지역의 역사를 잇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에 애틋한 마음과 고마움이 절로 난다.
강진병영성과 하멜은 한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에도 한 궤를 남긴 특별한 인연이 있다. 국내외 많은 사람들을 강진으로 이끌어 주민들에게 도움을 주게 하는 것이 병영성과 하멜을 위한 진짜 복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단순히 과거를 원형 그대로 복원하고 보존하는 것 보다는 이들 문화유산을 하나로 묶어 주민들의 수익을 올리는 방안이 검토됐으면 한다. 네덜란드 국화인 튤립을 주변에 심어 이들을 하나로 연계해서 지역축제로 개발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 일 것이다.
병영성복원공사가 완공 될 쯤에는 전 국민의 관심 속에서 행사가 치러졌으면 좋겠다. 지금부터 축제를 차근차근 준비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복원공사가 완료될 2013년이 강진의 남도답사1번지 ‘시즌 2’가 될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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