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보랑께 박물관
필자가 ‘와보랑께 박물관’을 알게 된 건 우연이었다. 지난핸가 휴일 어느 날 가족들과 TV오락프로그램을 보면서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이다. 고향에 박물관이 있다는 얘기도 처음 들었지만 이름부터가 별스러워 호기심이 갔다. 언젠가 한번 들러보리라 마음먹다 어린이날 아내와 함께 찾았다.
와보랑께 박물관은 강진군 병영면 도룡마을에 있다. 이곳은 30여 가구의 60여 명이 거주하고 있는 조그만 시골마을이다. ‘와라, 와보라’의 사투리 ‘와보랑께’가 이름이지만 ‘사투리’ 박물관은 아니다. 오히려 이곳은 옛 추억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생활유물전시관에 가깝다.
박물관 진입로엔 손길이 미치지 않은 매실나무들이 제멋대로 자라고 있었다. 오월의 햇살에 신록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입구에 들어서니 한 촌부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이분이 집주인 겸 관장인 김성우씨다. 수년간 마을 이장도 맡고 있다.
우연한 계기로 고향사투리와 옛 생활용품에 대해 관심을 가진 후 병영면을 찾는 외지인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주고 싶다는 개인적인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 지금은 누구나 와서 볼 수 있는 박물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한다.
초기에는 허름한 조립식 건물이었지만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강진군의 예산지원을 받아 2층 건물의 현재 박물관을 개관했다 한다. 입구에서 종을 울리면 언제라도 달려와 설명을 해준다고 한다.
이곳의 별미는 사투리 나무푯말이다. 마을 골목길과 담벼락, 심지어 논두렁에서도 볼 수 있는 푯말은 내용도 다양하다. ‘왜 뽀짝거리요’ ‘오매 사삭스렁거’ ‘암시랑토 안하당께’ 같은 정겨운 사투리부터 ‘애맨 사람 잡지 마쇼’ ‘아야 거시기 그거 가꼬와야’ 같이 배꼽 잡는 말도 있다.
사투리 푯말은 모두 관장의 작품이다. 생각날 때마다 만든 푯말이 벌써 200여개가 넘는다. 따라 읽으면서 너나없이 웃게 되고 해석하는 재미가 쏠쏠한 사투리 푯말을 만든 관장은 ‘참말로 겁나게 밸시런’ 사람이었다.
사투리푯말을 보니 필자의 할머니가 생각났다. 할머니의 별명은 ‘로네’였다. 유독 말끝에 ‘그랑당께’, ‘저랑당께’ 등 ‘께’자를 많이 붙여 동네 분들이 그렇게 부르셨던 것이다. 박물관 주변을 둘러보면서 할머니의 투박한 사투리가 저만큼에서 들리는 듯 했다.
박물관안에 들어서니 때 묻은 생활용품들이 가득했다. 전통 민속품은 물론 각종 전자제품, 전통악기, 학용품 등 3천여 점이 빼곡히 차있었다. 어느 것 하나 지나칠 수가 없었다. 투박하고 고단했던 어릴 적 우리의 삶이 그대로 담겨 있는 듯하여 정겨웠다.
이들 전시물 중엔 값지게 보이는 자료들도 있었다. 이병도박사의 하멜표류기 번역본, 영랑시집 최초 발행본, 최현배박사가 창안한 한글가로쓰기 방안에 관한 책 등이다. 특히 기억에 남은 것은 한글의 가로쓰기 서체였다. 한글을 알파벳처럼 대문자, 소문자, 흘림체로 써 놓으니 꼭 영어처럼 보였다.
와보랑께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우리농촌의 미래를 본 것 같아 마음 한켠이 뿌듯했다. 다들 떠나는 농촌과 잊혀져가는 고향사투리, 이들을 접목하여 지역명소로 이끈 김관장의 역발상이 참신해 보였다.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와보랑께 박물관은 다른 어느 곳에서 볼 수 없는 고향의 생활과 문화가 듬뿍 담긴 곳이다. 이런 박물관이 고향 강진에 자리하고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강진군 병영면 도룡마을의 ‘와보랑께 박물관’ 꼭 가서 봐 보랑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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