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은 나와 함께 태어났다.
지금 여기에 하나의 말(언어)이 있다고 하자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세상 사람들의 판단과 같은지, 아니면 같지 않는지 잘 모르겠다. 같든, 같지 않든 간에 각자 자기 나름대로 판단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은 누구나 말이 없으면 뜻을 전달 할 수 없다. 그리고 생각도 전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말만 가지고 이 세상 모든 것을 제대로 전달 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장자는 아니라고 분명하게 못을 박고 있다.
진실로 말을 가지고 말을 한번 해 보자.
무릇 도란 처음부터 무한하므로 경계가 없으며 말이란 일정하게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에 제 멋대로 떠든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을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여 말로서 이 사람, 저 사람을 구분하고 비교하고 대립 시킨다. 그래서 왼쪽, 오른쪽이 생겨나고 서로 상대적인 구분이 생겨난다.
때문에 이런 구분을 바탕으로 질서가 세워지고 이 질서는 필연적으로 인간 사회에 선택과 경쟁을 가져오게 했다. 인간이 말을 통해서 얻어지는 수확은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
이것을 8가지 덕이라 이르는데, 성인은 천지 밖의 현상이 어떻게 펼쳐져도 논하지 않는다. 다만 천지 밖의 현상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따지려 하지 않는다. 또 옛날 사적(事蹟)을 기록한 춘추에 대해서도 성인이 사실을 자세히 따져서 논하기는 하지만, 시비를 가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성인은 천지 사방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둘 뿐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구분하는 것은 실제로 구분 하지 않는 것이며 참으로 따지는 것은 실제로 따지지 않는 것이다.
구분하지 않고 따지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일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드린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간이 하는 말을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여 무조건 옳고 그름만을 따진다. 말을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도는 설명 할 수 없고, 큰 도는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위대한 변론(따지는 것)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다.
말로 따지려 들면 사물의 본 모습에서 자꾸 멀어진다.
인(仁)은 누구에게나 두루 펼쳐져야만 인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나친 겸손은 겸손이라고 할 수가 없다. 남을 헤치는 용기는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다.
위에서 말한 다섯 가지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원, 둥근 것을 더욱 둥글게 하려고 지혜를 짜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하여도 더 둥글어지지 않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한계인 것이다. 따라서 어느 한계에 도달하면 멈출 줄 아는 사람이 참된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것을 아는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있다면 그는 하늘의 보물 창고와 같은 사람일 것이다. 하늘의 보물 창고는 그 속에다가 아무리 보물을 같다 놓아도 차지 않고 아무리 꺼내어도 바닥은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옳고 그른 것을 따지든, 따지지 아니하든 그것이 판단인 이상 양자의 차이는 구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판단에 한계를 염두에 두고, 다시 인식문제에 대해 고찰 해 보기로 하자.
우리는 딱 잘라서 이것은 있는 것이고 저것은 없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는 무엇 하나 그대로 있는 것은 없다. 항상 있는 것도 없고, 없는 것도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은 없어졌다가 나타나고 나타났다가 다시 없어진다. 태어나면 죽고, 죽으면 다시 태어난다. 이렇게 보면 세상은 여관이고 만물은 하룻밤 묵고 가는 손님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한사코 없는 것은, 없는 것이고 있는 것은,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가을철이 되면 짐승들은 털갈이를 한다. 새로 난 털은 보송보송하고 부드럽고 아주 작다. 그러나 공중에 떠다니는 미세한 먼지와 비교해 본다면 짐승의 털은 어림도 없이 작다.
태산은 중국에서 가장 큰 산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늘과 땅과 바다와 비교해 보면 견줄 바가 아니다.
사람들은 칠백년을 산, 팽조를 아주 장수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팔천년을 산다는 대춘 나무와 비교해 보자. 팽조의 칠백년은 어림도 없이 작은 것이다.
태어나서 얼마 살지 못하고 죽은 어린 아이라도 하루살이와 비교 한다면 그래도 오래 산 것이다,
이처럼 우주대자연, 즉 도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이 세상의 어느 것도 비교 될 수 없을 것이다.
원래 대자연의 만물과 나는 하나이다. 거기에는 구분이나 차별이 없다. 그런데 대 자연과 나를 구분하고 이것은 옳다 저것은 그르다고 정해 놓고 좋다 나쁘다고 따지려 든다.
사람들은 어느 땐가 숫자 하나를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이 숫자 하나에 또 다른 숫자 하나가 더 생겨났다. 또 다른 두개의 숫자가 모여서 세 개가 되었다. 이와 같이 숫자는 계속 모여서 무한대로 늘어난다. 원래 숫자가 없었을 때는 몰랐지만, 숫자가 생기기 시작하자 늘어나는 것은 순식간이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이 숫자를 세느라 정신이 없다. 세면 셀수록 숫자는 늘어나 혼란스럽다. .
이와 같이 숫자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고 거기에 집착하기 때문에 혼란이 생긴다.
이 세상에서 가을 짐승의 털끝보다 큰 것은 없으나 태산도 이것에 비한다면 더없이 작은 것이다.
어려서 죽은 사람보다 오래 사는 사람은 없으니, 이에 비한다면 팽조도 일찍 죽는 사람이다.
하늘과 땅이 나와 함께 태어났고, 만물은 나와 함께 하나가 된다. 이상은 장자의 유명한 만물일체의 평등론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만물은 본래 평등한 자격으로 서로 연결 되어 있으며 그런 뜻에서 만물은 일체인 것이다.
그래서 장자는 옳고 그름을 둘로 나누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라고 말한다. 인위적인 판단만 가지고 옳다, 그르다고 말하는 것은 말을 그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우주자연의 도는 말이 없는데 사람들은 여러 가지 판단으로 말을 많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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